Entrepreneur's Insight

혁신, 기업가정신과 미래에 대하여

박재욱 2019. 12. 11. 09:17

 

 

타다를 운영하면서 가끔 "타다가 어떻게 혁신 서비스이냐?" 라는 질문을 듣곤 합니다. 서비스 혁신, 기술 혁신, 이용자 혁신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항상 가장 중요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기업과 서비스의 혁신성은 시장에서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시장과 이용자는 매우 냉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용자가 가치를 느끼지 못 하는 제품은 금세 사라지고, 가치있는 제품과 서비스는 선택을 받습니다. 

 

 

어떤 위대한 서비스도 시작부터 창대하지 않다.

 

2018년 10월 8일, 미디어데이를 열어 타다의 시작(오픈 베타)을 알렸습니다. 그 중 한 기자분께서 '새로운 모빌리티 서비스가 나온다고 해서 왔는데, 고작 이거냐?'라는 다소 날선 질문을 주셨습니다. 그 때 제가 했던 대답이 '어떤 위대한 서비스도 그 시작부터 창대하진 않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가끔 백마를 탄 초인이 등장하는 것처럼 시장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꿈꿉니다. 하지만 위대한 IT 기업들이 만들어온 과정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페이스북은 하버드 내의 주소록 같은 존재로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프로필을 만들 수 있었을 뿐, 현재 페이스북이 제공하는 타임라인이라는 익숙한 UI도, 그룹이라는 서비스도, 기업들이 사용하는 페이지라는 기능도, 메신저라는 기능도 없었습니다. 하버드를 제외한 대학교에서는 사용할 수도 없었죠. 그런 페이스북이 아이비리그 대학들로, 전세계 대학들로, 그걸 넘어 전세계인들이 사용하는 소셜미디어가 되었습니다. 페이스북은 2019년 12월 10일 기준, MAU 20억명 이상을 기록하는 시가총액 $574B(약 684조원)의 공룡 IT 기업이 되었고 인스타그램, 왓츠앱 등의 기업을 인수하며 전세계의 사람을 잇는 가장 중요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2005년 무렵 페이스북의 모습

 

구글의 초창기도 다르지 않습니다. 검색창 하나가 달랑 있는 구글의 첫 페이지는 지금과 다르지 않게 보이지만, 그 이면에 깔린 기업의 본질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검색을 무료로 제공하고, 광고 수익을 얻는 비즈니스 모델은 모든 플랫폼 비즈니스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공룡인 야후가 있었던 검색엔진 시장에서 '더 정확한 인터넷 검색 결과를 보여준다'라는 굉장히 기본적인 시장의 문제를 해결한 것부터 시작한 구글은 플랫폼 비즈니스의 근간을 만들며 안드로이드, 유튜브, 지메일, 구글플레이, 웨이모(자율주행)의 서비스를 보유한 기업이 되었습니다. 12월 10일 기준으로 시가총액은 $927B (1105조원)에 달합니다. 

 

구글 초창기 버전의 모습

 

전세계 콘텐츠 시장을 호령하고 있고 우리나라의 방송사들을 떨게 만들고 있는 넷플릭스는 시작할 때는 DVD를 우편으로 배송해주는 서비스였습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한국에서 시작했으면 '걸어가면 5분안에 있는 비디오 대여점 대신 하루 이틀을 걸려 우편으로 DVD를 받는 사람이 어딨느냐'면서 조롱을 당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넷플릭스는 영상 콘텐츠를 사랑하는 수많은 이용자들을 보유하게 되었고, 그 이용자들의 힘을 기반으로 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진화합니다. 그리고 전세계에서 콘텐츠 제작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는 기업중 하나로 변신을 합니다. 스스로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을 파괴하는 전략을 선택하며 미래에 베팅을 해 $132B(157조원)의 기업가치를 가진 기업이 됩니다. 한국에서 지상파 3사의 수익구조가 안 좋아지고 있는 가운데 넷플릭스는 200만명이 넘는 유료 이용자를 확보했습니다. (관련 기사:  https://platum.kr/archives/131417

 

넷플릭스 초창기 서비스 모습 

 

 

이처럼 어떠한 위대한 기업도 시작부터 창대하거나 위대하지 않습니다. 스타트업은 시장 환경에 맞게 계속 혁신하여 시장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이용자의 힘을 바탕으로 진화해 나갑니다. 

 

 

혁신은 이용자와 시장이 판단한다.

 

제가 처음으로 아이폰을 구매했던게 2009년으로 기억합니다. 그 후로 약 10년간 아이폰은 진화를 거듭해왔습니다. 매년 새로운 아이폰을 출시했고, 전에 없던 모바일 생태계가 생겨났고, 이를 통해 스타트업 창업붐이 만들어졌습니다. 아이폰 출시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에서는 PDA폰이 실패했는데, 스마트폰이 될리 없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이 많았고 어떤 기업들은 시장의 니즈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피쳐폰 개발에 더 공을 기울여 이제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매년 아이폰이 출시될 때는 또 어떻습니까? '혁신은 없다'는 타이틀이 신규 아이폰이 출시될 때의 기본 타이틀이었습니다. 심지어 나무위키에는 '혁신은 없었다' 항목(링크: https://namu.wiki/w/%ED%98%81%EC%8B%A0%EC%9D%80%20%EC%97%86%EC%97%88%EB%8B%A4)도 있습니다. 

 

아이폰이 출시 될 때마다 단골 타이틀

 

하지만 매번 혁신이 없었다는 조롱을 받은 애플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회사($1.19T, 약 1420조원)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기업과 서비스가 혁신적인지 아닌지는 시장에서 이용자 스스로가 판단을 합니다. 한국 사회가 혁신을 맞다 아니다로 정의하며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기 보다, 시장에서 이용자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 기다려주었으면 합니다. 저는 그게 혁신을 만드는 첫 단추이자 시금석이라 생각합니다.

 

 

기업가는 시장의 문제를 포착해 시작하고 성장이라는 꿈을 먹고 자라는 존재이다.

 

제가 강연을 할 기회를 얻었을 때 '기업가는 시장에서의 결과를 통해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종종합니다. 시장에서 결과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조건은 시장의 문제를 포착하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시장의 문제와 그 것을 해결하기 위해 내놓은 나의 서비스가 긍정적인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작은 바늘구멍을 통과해야 비로소 이용자들의 선택을 받습니다. 어떤 분들은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고 시장의 반응을 얻는게 '저 정도는 별거 아니다'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한 서비스가 세상에 태어나 이용자의 선택을 받는 것은 정말정말정말정말정말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는 기업가들은 사회적으로 매우 희소한 자원이라 생각합니다. 

 

정말 운이 좋게 시장에서 선택을 받은 제품이라도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특정 규모까지 계속 성장을 해야합니다. 이 성장이라는 꿈이, 기업가가 계속 상상하고 혁신하며 서비스와 기업을 키우는 원동력이 됩니다. 서비스가 커지면 플랫폼으로 진화하게 되고 그를 통해 풀 수 있는 시장의 문제점들도 더 많이 보이게 됩니다. 계속 발견되는 문제점들을 하나씩 해결하며 지속 가능성을 좇는 행위가 기업의 성장으로 연결됩니다. 이 기업의 성장은 일자리 창출로, 그리고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집니다. 

 

시장에서 인정받는 제품/서비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실제

 

하지만 최근 들어 한국의 기업가들은 성장이라는 키워드 자체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성장을 하여 기존 산업의 눈에 들어오는 순간, 새로운 반발과 규제가 꼬리표처럼 따라붙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남 모르게 조용히, 목소리를 최대한 낮춰 눈에 안 띄는 방식으로 성장하고 싶어합니다. 희소한 자원인 기업가가 만들어낸 시장의 문제를 발견하는 방법도, 큰 기업을 만들기 위해 악전고투했던 노하우 등도 이와 함께 조용히 묻힙니다.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기업의 성장 노하우는 대가 끊겨 새로운 기업가들이 도전할 때마다 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합니다. 

 

이처럼 규제 때문에 성장에 발목을 잡히는 것은 단순히 한 회사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경제 활력성에 문제를 미치는 큰 문제라 생각합니다. 경제가 활력을 띄기 위해서는 더 많은 기업들이 생겨나고 그 기업들이 큰 기업으로 자라나고, 그 노하우와 자본이 새로운 기업가들에게 흘러들어가는 선순환 구조를 띄어야 하는데 규제라는 장벽이 이를 크게 가로막고 있습니다. 

 

 

모빌리티 플랫폼과 미래 시대의 방파제

 

모빌리티는 전세계 IT 시장을 움직이는 중요한 패러다임입니다. PC-인터넷-스마트폰을 넘어온 IT 산업의 패러다임이 모빌리티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제조업으로서의 자동차 시장이 사라지고, 플랫폼으로서의 모빌리티 시장이 전세계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모빌리티 시장은 2015년 우버가 금지 당한 이후, 콜버스, 카풀 등이 계속 규제에 막히며 반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 하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타다 금지법도 등장을 했습니다. 

 

미국에선 이미 상용화에 임박한 자동차대여사업 기반의 자율주행 서비스 - 웨이모

 

자동차가 진화를 하는 과정에서 자율주행 시대가 필수적으로 올 것이라는 것은 모두가 인지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모빌리티 플랫폼이 가지는 의의를 모르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자율주행 시대에 서비스가 제대로 동작하기 위해서는 언제 어디에서 이동 수요가 있는지 파악을 하고, 공급을 최적화하는 기술력이 필수적입니다. 원격으로 차량을 관리하고 기존의 인프라(주차, 정비, 세차 등)를 활용해 서비스 퀄리티를 최적화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동을 할 때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라이프스타일의 이용자가 절대적으로 많아야 합니다. 이를 통해 플랫폼 기업은 자율주행 시대가 되며 새롭게 열릴 일자리를 파악하고, 새롭게 바뀌는 시장에서 직업이 사라질 분들을 재교육하고 그 분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는 방파제 역할을 해야합니다. 

 

특이점은 점점 다가오는데 우리 사회의 방향은 자꾸 후진을 합니다. 다가오는 미래를 대비하고 준비해도 모자란 시간에 편을 갈라 싸움을 부추깁니다. 아무쪼록 지금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고민을 하고, 시장과 이용자에 판단을 맡겨 다른 누군가가 아닌 이용자 스스로가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모빌리티 혁신을 하기 위해 한국 시장에 남은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시계 바늘은 애석하게도 자꾸 미래를 향해 움직입니다.